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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알뜰장/독장

노점상으로 산다는 것

우연히 알게 된 지인의 이야기입니다.

나이는 40대 후반, 두 아이와 한 아내를 책임지는 가장입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주말엔 온 가족이 교회도 열심히 나갑니다. 그의 와이프는 동네 골목 한 켠의 조그마한 가게에서 분식류 장사를 합니다.

   

얼핏 보기엔 우리 주변에 흔하고 평범한 서민층 가정의 그림 같지만 실상은 삶이 극도로 고달픈 가정입니다. 이들에게는 부채가 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며 먹고 살기 위해 빚을 더 얻어 얼마 전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노점상으로, 아내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골목가게'로 맞벌이를 하지만 소득이 시원찮아 카드 돌려막기가 일상화 되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사전 준비가 소홀했던 면은 있습니다. 이자는 연간 30%를 훌쩍 넘습니다. 

남편은 교회에 다녀온 날에도 노점 행상에 나서 익일 새벽까지 거리를 헤매지만 수입이 적은 건 속수무책입니다.

 

이 노점상의 차량은 낡고 낡은 1997년식 1톤 포터입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 가끔 마주치면 이야기도 하며 지냅니다. 연식이 오래 되어 차량이 불결해 보이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먹을거리 장사를 합니다. 매출이 시원치않은 이유 중 하나 입니다. 그도 훤히 알고 있지만 조금 나은 차량으로 바꾸면 또 빚과 이자가 늘어나기에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는 환절기마다  판매 품목 변경을 고민해야 합니다. 계절이 지나면 매출액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품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해를 거듭하면서 노점상을 해왔지만 특별한 묘수가 없답니다.

 

먹을거리의 재료값은 해마다 오르는 게 일반적이어서 이것저것 살펴보면 업종이나 품목 전환이 쉽지 않습니다. 재고 고민은 그림자처럼 항상 따라 다닙니다.

 

고정된 자리가 없어 항상 새 자리를 찾아 이동해야 하는 고충도 있습니다. 어쩌다 매출이 좀 오르는 자리에서 장사를 하다보면 금방 신고가 들어가 단속반이 뜹니다. 대부분 1차 경고 뒤에 다시 적발되면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고정 자리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그 별은 아무나 딸 수도 없답니다. 무슨 무슨 연합회에 가입하거나, 유달리 배짱이 좋아 밀어붙이거나, 공공기관에서 마련한 자리에 들어가야 한 답니다. 고정 자리라고 해서 단속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일부 기업형 노점이야 과태료가 나와도 수입에 비하면 새발의 피여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만 영세 노점에게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이 큰 돈입니다. 장사에 신경을 쓰다 보면 눈 깜빡할 사이에 단속반이 들이닥칩니다. 과태료  액수는  지방자치단체별로 다릅니다. 또 누적된 적발 횟수에 따라 누진되는 금액도 차이가 있습니다.

 

자칫하면 2~3일, 아니 그 이상의 힘든 노동의 댓가가 단속으로 인해 날아가 버립니다. 말 그대로 허탈, 멘붕이지요. 단속 와중에 노점상과 크고 작은 마찰이 있기도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한 생계형 노점상과 법이 충돌하지만 뚜렷한 해법이 아직 없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에선 차량 노점을 허용하는 곳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푸드 트럭이 대표적이지요. 이들은 세금을 내고 장사를 합니다.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그나마 일부 지자체가 중개에 나서 노점상의 영업 장소와 영업 시간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시 명동과 성남시 분당 서현역, 종로 2가쯤(기억 가물가물)과 을지로 사이에 세로로 뻗은 '가지골목' 등 입니다. 수많은 노점상을 유치하기에는 숫자도 적고 공간도 좁아 일부 노점상만 이용할 뿐입니다. 통행에 큰 불편을 주지 않고 도시 미관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이지만 노점 허용 구역을 더 늘려야 합니다.

 

인구가 밀집된 서울과 경기도 등이 먼저 나서면 좋을 듯합니다. 우리도 늦었지만 미국 등의 제도를 서둘러 연구할 때입니다. 먼저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노점상을 가까이서 대해야 하는 주변 상가 상인들의 고민 또한 생계형 노점상 못지않게 깊습니다. 건물 임대료에 월세, 종업원 월급, 세금, 공과금 등등 고정비용만 해도 지출은 많은 반면 경기 악화로 수입은 줄어드는 판에 노점상이 달가울리 없는 게 당연하지요.

 

이 분들은 노점상의 물건이 점포에서 파는 상품과 겹치지 않더라도 점포 매출에 크나 적으나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판단합니다. 점포의 매출 감소는 사실일 가능성이 큽니다. 동일 상품이라면 상도의를 벗어난 것입니다. 당장 당연히 멀리 물러나야지요. 

 

월세 등 이것저것 부담하면서 어렵사리 운영 중인데 '한 푼도 안 내는 노점상'이 눈에 띄면 얄밉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게다가 노점 차량이 고객의 가게 출입에 불편을 주거나 간판 등 홍보물을 가려 가시성에 지장을 준다면 속이 터집니다.

  

장사가 안될수록 노점상이 눈에 거슬려 신고 여부를 놓고 갈등이 커져 인정과 매출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합니다. 일부 상인은 홧김에 신고를 합니다. 호감형이든 비호감형이든 인상이 깊어 기억되는 노점상이 어느날 갑자가 사려져 다시 나타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필자가 아는 노점상은 보통 아침부터 새벽 2~4시까지 이곳저곳을 떠돌며 장사를 하지만 벌이가 시원찮은 날은 매출이 2만~3만 원에 불과합니다. 순익이 아니라 수입입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종종 그랬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기 악화로 소비자의 지갑이 닫혀 최근에는 수입이 2만~4만 원 정도로 적은 날이 비일비재해졌답니다.

차량 이동에 필요한 기름값과 점심과 저녁 때 각각 한 줄씩만 사 먹는 1,000~1,500원짜리 김밥값 등의 경상비는 이들에게 큰 부담입니다. 그 외에 돌발적으로 지출해야 만하는 비용도 만만찮습니다. 가급적 점심,저녁을 늦게 먹고 새벽까지 버티지만  '배꼽시계'는 눈치와 때를 모른답니다.

 

허기와 싸우고 싸운 끝에 2,500~3,000원짜리 백반을 24시간 영업하는 밥집에서 새벽에 사 먹기도 하지만 이들에게는 사치와 호사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때로는 김밥 한 줄값이 아까워 도시락을 싸서 갖고 다니기도 하지만 고생하는 집사람에게 수고를 끼치는 미안함과 그 비용이 그 비용이라는 생각, 푼돈이나마 나도 써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사 먹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주변 상인과 눈도장이라도 찍을 셈으로 김밥값보다 비싸더라도 일부러 근처 가게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살펴보면 반찬 한두 가지 뿐인 도시락이라고 쳐도 집에서 마련하려면 비용이 김밥값보다 많이 들 것 입니다. 

 

벌이가 꽤 괜찮은 날도 가뭄에 콩 나듯이 있는데, 그때는 피곤을 잊을 수 있지만 그 건 잠시일 뿐, 곧 다음 날 걱정에 짓눌린 답니다. 이때도 손안에 남는 돈이 5만~6만 원 정도랍니다. 그 이상 버는 날은 횡재겠지요.

애로 사항은 점포에서 영업하는 상인들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경기는 되살아나지 않고... 매출은 갈수록 줄고... 코스트는 올라갑니다.

 

임대를 알리는 전단이 유리창에 붙은 빈 점포가 부쩍 늘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 만해도 임대 전단을 영업 중인 점포에 붙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이 같은 사례를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불경기가 심각함을 알리는 메시지입니다.

 

올해 초에 강남구 역삼역 역세권에 위치한 결혼식장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하객으로 참석해 덕담을 건넨 뒤 지하철(출구 번호는 잊음)을 타러 걸어오는 길에 차도 좌우 건물에 붙은 임대 플래카드가 이외로 많아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약 반가량이 빈 점포였습니다. 서울에서도 '한가닥 한다'는 강남구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끼고 있는 2차로에 위치한 빈 점포가 6개월 동안이나 새 주인을 못 찾고, 골목 안의 가게가 4개월 가까이 새 입주자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모두 임대료나 월세는 그대로인 점포입니다.

 

여담일 수도 있지만, 이 같은 현상에는 임대 놓은 가게의 장사가 잘 안 되어도 일부 건물주가 임대료나 월세를 낮추지 않는 이유도 한몫하지요. 장사가 예전만 못한데 공간 사용료는 내려가지 않으면서 코스트는 높아지니 가게를 비우는 게 오히려 비용면에서 효율적일수도 있지요.

   

모두가 어려울 땐 흔히 조금씩 양보해 '윈윈'하는 방법을 찾으라고 합니다. 앞서 밝혔듯이 명동과 서현역 등의 성공 사례도 있지만, 이 경우는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생계형 노점을 무조건 단속하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요즘 같은 불경기에 주변 상인들의 피해를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노점상은 특히, 같은 상품을 파는 노점상은 상가에서 가급적 멀리 자리잡아야 할 것입니다. '저층의 상가조차 없는 곳 가운데 장사가 될 만한 곳이 이디 있냐'고 항변하면 상인들의 처지를 무시한 채 계속 피해를 주겠다는 뜻입니다. 

 

상인 분들은 점포 임대조차 할 수 없는 노점상보다는 형편이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니, 매출 대폭 감소가 없는 한 그들을 조금만 배려하면 어떨까요.  

 

아직 제도적으로 갈등을 해소할 해법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앉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감히 제안합니다. 양측이 서로에게 각박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날이 문제가 해결되는 날입니다. 어렵지만 남을 배려하는 사회가 바로 해법입니다.

      

개인적 감상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하면서 글을 올렸습니다. 노점과 주변 상인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힘썼지만 미숙한 점이 있을 것입니다. 지적 바랍니다.

 

※ 위의 글 내용은 필자가 아는 특정 노점상과 그 주변 몇몇 노점상의 이야기로, 노점상에 전체에 해당되지는 않겠지요. 하루 수입금과 행적, 개인 사정, 양측의 입장 등에 편차가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