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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억울한 상식/생활/살림의 지혜

추석 보이스피싱의 진화 "집전화 해지" 엄포

 illust by 아사달

 

"고객님의 집전화가 오늘 중으로 해지될 예정입니다" 며칠 전 무심코 받은 전화에서 느닷없이 흘러나온 음성입니다.

 

'아니, 연체  한 번 안 했는데 누구 마음대로 해지 해, 너 엿장수야'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머뭇거리는 사이에 "자세한 안내를 받으시려면 O번을 눌러주세요"

 

직감적으로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처음 받아 보는 내용이어서 궁금해 O번을 눌렀더니 "사용하시는 집전화 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누르세요" 라고 또 지시합니다.

 

'잉~ 전화를 건 걸 보면 우리 집 번호를 모를 리 없을 텐데, 게다가 주민등록번호까지 알려달라고?'

감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이 기계적 음성만 이어지는 자동응답전화(ARS)입니다. 보이스 피싱(voice pishing)의 진화된 수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끊었습니다.

 

 

법원과 검찰청, 경찰청, 콘도 당첨 등을 사칭한 보이스 피싱 전화는 받아 보았어도 이런 전화는 처음입니다. 이 같은 전화가 시키는 대로 끝까지 따르면 적게는 소액결제 피해(최대 30만원)를, 크게는 사기 대출 등의 피해를 입게 됩니다. 최근엔  '너의 불륜을 폭로하겠다'는 랜덤 보이스 피싱에 공무원 여러 명이 돈을 보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찔러본 건데 '앗! 뜨거워라'하고 제대로 걸려든 것이지요. 또 전직 경찰청장 가족까지 범죄의 타깃으로 삼는 등 점차 대담,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추석 동창 모임' 스미싱에도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클릭하면 소액 결제 등 피해를 입습니다. 한가위엔 저마다 고향 다녀오기도 바쁜 판에 동창 모임을 가질 시간적 여유가 있을까요? 친한 동창들끼리의 만남이라면 전화로 연락이 왔거나  '추석 홍길동고교 동창 모임' 또는 '추석 홍길동대 동창 모임'처럼 학교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혔겠지요.

추석 연휴의 들뜬 기분을 겨냥한 보이스 피싱이나 스미싱 사기에 당하시지 말라고 글을 올립니다.

 


 

생각해보니 발신자 전화번호를 알 수 없었습니다. 번호를 알아야 대처할 수 있는데 능력 밖의 일이라 국번 없이 100번으로 다이얼을 돌리니 젊은 남성 상담원이 받았습니다.

 

상담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예의를 갖춰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있냐"고 문의했는데 "불가능하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전화를 건 지역이라도 알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지만 "신분증을 지참하고 대리점(?)으로 나가 보라" 며 "단, 전화를 받은 당사자가 발신자 번호를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100번에 전화를 건 의도가 발신자 번호를 알아내려는 것이었는데 수신자가 발신번호를 알고 방문해야 한다니 기막힐 노릇입니다. 시스템 상의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수신자로서는 갑작스러운 체증처럼 답답한 경우입니다.

 

상담원은 또 전화 발신자가 자신이 전화를 건 곳의 번호를 알고 싶어할 경우 알려줄 수 있다면서 발신자 본인임이 확인돼야 한다는 조건을 붙입니다. 아니, 리다이얼 버튼만 눌러도 먼저 전화 건 곳에 다시 걸 수 있는데 웬 생색인지 영문을 모르겠네요. 당할 뻔한 보이스 피싱 전화의 발신번호·위치를 문의했었는데…

 

혹시 우리처럼 연식이 오래된 전화기를 사용하는 사람이나, 그 기능이 있어도 액정이 깨진 전화기를 쓰고 있거나, 그 기능을 설정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배려인지 모르지만 그다지 효용가치는 크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 전화기에도 리다이얼 버튼과 액정화면은 있습니다. 다만 액정이 깨져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개인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 발신자 번호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의 설명을 듣고 나중에 생각하니 '그럼 전화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 수신자는 보호하지 않고 방치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추석 연휴 느슨해진 분위기를 노린 보이스 피싱과 빈집 털이 등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