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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알뜰장/독장

어느 노점상의 하루

노점상이 직업인 그는 오늘도 피곤에 지친 몸을 억지로 추스리며 아침 일찍 일어나 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줍니다. 이것저것 집안일부터 돕고 나서 거리에서 장사할 때 갖고 나갈 차를 닦고 팔 물건을 점검합니다.

 

어제도 평소처럼 동틀 때까지 장사를 했고 오늘도 내일 새벽까지 장사할 예정이지만 장사할 마땅한 자리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입니다. 오전 중에 가급적 일찍 핸들을 잡지만 운전 중에도 행선지가 생각나지 않아 거리를 빙빙 돌다 간신히 자리잡기 일쑤입니다.

 

이 눈치 저 눈치 다 보며 자리를 잡았지만 이번엔 단속과 주변 상인들의 거센 항의, 매출 걱정이 밀려옵니다. 이럴바엔 차라리 아파트에 들어가 팔아볼까(알뜰장이나 독장) 생각하지만 자릿세와 전기 이용료를 내야만 하기 때문에 자신이 없어, 그나마 자릿세 걱정 없는 거리에 할 수 없이 눌러앉습니다.

 

 

아파트단지 초입 횡단보도 주변에 자리잡은 노점은 행인이 많아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차로에 주차해 항상 사고위험에 노출돼 있다.

 

점심 때가 훌쩍 넘어 허기가 배를 노크하지만 점심 식사는 참아야 합니다. "돈벌이도 시원찮은데 무슨 밥" 이냐고 자책하면서 챙겨 온 물만 연신 들이켭니다. 이맘 때면 차량 매연으로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은 따끔거리기 시작합니다. 건강 걱정이 앞서지만 노상에서 하루종일 버텨야만 하는 처지라 이내 체념하고 순응합니다.

 

그런데 실상 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체력 고갈과 매연 등이 주요 원인이지만 인간 대접을 못 받는데서 밀려드 모멸감과 굴욕감 등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더 큰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또 뿌리치기엔 역부족인 회의감과 자괴감, 무력감, 위축감도 문제입니다. 

 

오늘도 역시 기대만큼 팔리지 않아 새 자리를 찾아 자리를 뜹니다. 하루에도 두어 번은 이동하는 게 일상입니다. 차량 연료비가 만만찮아 멀리는 못 갑니다. 이렇게 새벽까지 판 돈 가운데 실제 주머니에 남은 돈은

3만~10만원 미만에 불과합니다. 10만원만 남아도 그날은 대박입니다. 기름값과 물건 사온 값을 제하면 공치거나 1만~2만원을 손에 쥘 때도 허다합니다.

 

알바 시급이 훨씬 낫지만 삶에 찌든 표정이 역력한 40대 남성을 반기는 일자리는 없습니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가방 끈이 길지 않은 입장에서 그나마 가진 밑천(250만원도 안되는 차량)으로 할 수 있는 건 노점상입니다.

 

어둠이 드리운 저녁이 되어서야 식사를 합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싼 듯한 식당을 찾아보지만 만만한 곳이 없어 결국 편의점에서 1천원짜리 컵라면으로 오늘의 첫 끼니를 때웁니다. 혹시라도 손님을 놓칠까 싶어 뜨거운 물을 부은 채로 컵라면을 들고와 자기 차에 달라붙은 듯한 자세로 허겁지겁 먹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지 무려 12시간 이상 지난 시간입니다.

 

퇴근 길의 행인들 모두가 자기보다 형편이 좋아 보여 신세 한탄을 해보지만 곧 부질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마음을 도닥거립니다.

 

수많은 행인 중에 물건을 사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난 듯 합니다. 노점 물건은 비위생적(맞는지? 틀리는지?)이라는 고정관념과 불경기 탓에 영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상품의 질이 낮은데 비해 값이 싸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한몫하겠지요.

 

아내와 아이들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립니다. 밥만 먹고 살기도 버거운데 철없는 아이들이 장난감이나 군주전부리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가끔이나마 장사가 덜 되는 주말에 가족과 함께 가까운 놀이터에 가는데, 입장료 없는 곳만 찾아가고 식사는 집에서 간단히 준비해 간 것으로 때웁니다. 오후엔 다시 길거리로 향합니다.

주말에도 하루종일 거리 장사를 나가야 할 처지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해 보잘것없지만 가끔 아빠 노릇을 해야겠답니다.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행인의 발걸음이 뜸해지면서 잠이 쏟아집니다. 장사는 죽을 쑤는데 취객이 시비라도 걸어오면 큰일입니다. 삼삼오오 오가는 흐트러진 모습의 취객들을 보면 행여라도 행패를 당할까 가슴이 철렁합니다. 이맘때면 종아리가 퉁퉁 부어오르다 못해 저리고 아픕니다. 매일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서 있는데 장사 없습니다.

 

새벽까지의 수입이 별로 입니다. 안 팔려도 거리에서 버티는 건  이자 때문이기도 하지요. 가진 것이 없으니 제1금융권이 아닌 곳에서 대출 받을 수밖에 없어 연리 40%에 가까운 돈을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빌립니다. 노점상 가운데 상당수가 신용불량이어서 상대적으로 이자가 낮은 카드론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는 현재 살고 있는 지하 단칸방의 약소한 보증금을 빼 월세방을 얻고 나머지는 빚을 갚을 계획입니다. 날로 치솟는 월세 때문에 얼마나 빚을 갚을지 알 수 없지만 지금보다 못한 주거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는 점은 알 수 있습니다.

 

일부 보도에서 월 순익 1000만원 이상의 기업형 포장마차가 지적을 받았지만 국내에 그 같은 곳이 얼마나 될까요. 불법인 노점상을 두둔하는 게 아닙니다. 노점상들은 장마철 전후와 폭설이 내리는 기간 전후에는 공을 칩니다. 합치면 1년에 두 달가량 될까요?

 

이들의 고충은 또 있습니다. 베이비 부머 등의 창업이 늘고 있어 장사할 장소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매연과 체력 고갈, 허기,무더위와 한파, 그리고 모멸감과, 굴욕감, 회의감, 무력감, 위축감에도 불구하고 부채와 이자, 생활비, 아른거리는 가족의 얼굴 때문에 거리를 떠나지 못하는 노점상이 어디 한두 명일까요. 

 

'베푼 만큼 거둔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처한 이들을 향한 아량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주변 수많은 노점상들의 삶을 이제라도 돌이켜 보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