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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살아가며..

여자화장실 성범죄

나는 대략 1~2년에 한 번쯤 남녀화장실을 구별하지 못해 여자화장실 입구의 출입문을 본의 아니게 열어 제킨다. 주변의 가까운  화장실을 발견하지 못해 소변을 참고 참다가 한계에 달해 앞뒤 가릴 수 없이 급해졌을 때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 여성용 화장실 안으로 한 걸음도 들여 놓은 적은 없다. 실수를 거듭하면서 나도 모르게 요령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문을 열자마자 화장실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으면 본능적으로 번개처럼 남자가 '서서 쏴'를 하는 입식 소변기 유무를 살피는 것이다.

 

핑계 같지만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언제부터인지 남녀화장실 안내표지판이 다급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평소에도 쉽게 식별할 수 없게 변해가기 때문이다.

 

예전엔 '남자용'과 '여자용'을 큰 글자로 표시했다. 그림 따위는 없었다. 이후 글자 크기가 점점 작아져 불편했는데, 어느새 아예 글자는 사라지고 남녀의 특징적 모습을 형상화한 표지판이 화장실 문에 부착되기 시작했다. 그림과 영어 단어가 함께 쓰인 표지판도 있다.

 

어느 화장실에 부착된 남녀화장실 구별 표지판.

 

위 사진을 아래와 같이 한글 표시도, 영어 단어 표시도 없는 표지판으로 가정해보자. 늦은 밤 실내라면 상당히 식별하기 어렵지 않은가? 화장실 앞 조명도가 실내 매장보다 훨씬 낮은 곳이 수두룩하다.

 

배설 욕구가 강하고 급할 때 얼핏 보고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실제로 형상화된 남녀 모습만 담긴 그림 표지판을 부착한 곳도 심심찮게 눈에 뜨인다.

 

 

 

 

화장실 이야기의 서론이 긴 것은 다음과 같은 노파심에서다.

최근에 여성 화장실 안쪽으로 한 발을 들여 놓은 남성에 대해 법원이 '성추행 의도'가 있다고 보아 유죄를 선고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또 모바일 채팅으로 만난 소녀와 술을 마신 뒤 잠자리를 가진 남성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다는 보도도 있다.

 

1심과 2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1심과 2심은 이들이 팔짱을 끼고 숙박업소로 들어갔으며(CCTV 녹화 자료), 여자가 성행위를 심하게 거부하지도 않았고, 동침 후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기에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기억난다. 이 경우 금품이 오고간 청소년 성매매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만 13세 이상이면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 이 나이면 누구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자신의 의사만으로도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말이다. 이번의 경우, 남자는 30대 후반이고 여자는 10대 미성년자여서 적절한 성관계는 아니다. 여자가 미성년자라는 점이 3심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오키

 

이와 유사한 판결 사례를 드물지 않게 접하면서 여성을 과보호한다는 생각이 든다. 상기 사례의 경우 그럴만한 사유가 있어 유죄 판결을 받았겠지만, 만약 추행할 의사가 추호도 없는 남성이 용변이 다급해 여자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이를 화장실 안에서 목격한 여성이 경찰에 신고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요즘 곳곳에 달려 있는 CCTV에 이 장면이 촬영됐다면 성추행 기도의 증거가 된다.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오해에서 비롯됐지만)증인이 있고 녹화된 영상 자료도 있어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 평생을 성추행 낙인이 찍힌 채 고통스럽게 살아야 한다.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런 표지판이라면 실수하는 사람이 대폭 줄어들 것이다. 개인적으로 적극 권장한다.

 

 

가끔 끔찍한 성범죄(특히 10세 미만 여자아이 대상)를 저지른 남성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전관예우 탓이려니 하고 지나치기도 한다. 전관예우에 찬성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전관예우가 전혀 없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개인의 힘으로 저항하기에는 결과가 달걀로 바위치기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무기력해진다. 나는 남들이 나의 처신을 모르기를 바란다.  남이 자신의 처신을 모르기 바라는 남들도 적잖을 것이다. 비겁한 것인가. 영화 속 명대사처럼 '비겁한 변명입니다' 인가.

 

법원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운용하는 곳이라서 미진함과 실수가 없을 수 없으니 만에 하나라도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어 지난 결과를 되돌아보고 한 번쯤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결론을 짓고 포스팅을 끝내려고 했는데, 오늘 오랜 벗만큼 절친한 후배와 저녁을 먹고 차 한 잔 마시며 나눈 담소 중 한 대목이 떠올라 글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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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우 지인이 실형을 받았단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그는 사시 1차 시험에 합격한 만큼 두뇌가 아메바도 아니고, 성실한 편이며 효심도 깊어 집안은 물론 주위에서도 기대가 컸단다. 옥에도 티가 있다고 했든가. 그에게도 흠이 있어 술을 마시면 이상해진다는 것이다.

 

고고

 

한 번은 음주한 상태에서 지나가던 여자를 눕히고 딱 한 대 때렸는데, 이 행동의 결과가 '성폭행 미수죄'였단다. 자신을 성폭행(강간)하려고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나타나 자신을 눕히고 무력을 행사했다고 여자가 진술했고 이 진술이 받아들여졌단다. 

 

CCTV에 찍힌 영상에는 쓰러진 여자를 때리는 장면은 있지만 숨어서 기다리는 장면은 없었단다. 숨어서 기다리는 장면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발적이 아니라 계획적 범행이라는 여자의 진술이 인정됐단다. 범의를 품고 숨어서 기다리는 장면을 찾아달라고 요구했지만 끝내 못 찾았단다.

 

이 경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요구한 장면이 제시되지 않았고, 금품 강탈이 없었다고 하니 폭행죄만 적용되어야 하는데, 정확한 법률 용어는 모르지만 '강간치상죄'가 적용된 것 같다.      

 

이 스토리는 아우에게 전해들은 것이어서 사실관계가 정확한 것은 아니다. 내 짧은 식견을 바탕으로 '정황'을 판단한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두둔하려는 의도는 없다. 지인의 얘기만으로 구성해 객관성이 부족한 면도 인정한다.

 

안습

 

참, 아우의 지인은 전에도 똑같은 상황으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단다. 그때는 실형을 선고 받지 않았단다. 그렇다면 누범도 상습범도 아니고, 일부 증거도 불충분한데 3년7개월의 실형은 가혹하지 않은가. 법원은 전력이 있으니, 앞으로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차원에서 그런 실형을 내렸을 거라는 짐작은 할 수 있다.   

 

이후 이 가정은 풍비박살이 났다. 부친은 알코올에 중독되고 모친은 정신이 거의 나간 채 눈물로 지샌단다. 추측대로라면 재발을 예방하려는 조치가 한 가정 전체를 무너뜨린 원인 가운데 한 가지가 된 꼴이다. 

 

이 글은 전문적 법률 지식 없이 일반상식(?)을 토대로 썼다. 법조인이나 법률적 상식이 풍부한 사람 측에서 보면 부족한 내용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을 지적해주면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